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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시선 우리 곁의 난민, 예멘 무하메드 아들 함자, 이슬람포비아 이슬람공포증, 카슈미르 독립운동 아마드, 난민 수용 엇갈린 의견, 가짜 난민 논란 불법 노동자 취업 난민 다큐 시선 77회

애니 2018. 9. 6. 19:47


다큐시선 우리 곁의 난민, 예멘 무하메드 아들 함자, 이슬람포비아 이슬람공포증, 카슈미르 독립운동 아마드, 난민 수용 엇갈린 의견, 가짜 난민 논란 불법 노동자 취업 난민 다큐 시선 77회


다큐 시선 77회 우리 곁의 난민 2018년 9월 6일 방송


2018년 봄, 한국 사회에 분 난민 바람 

난민 수용에 대한 엇갈린 의견 

그들은 과연 일하러 온 ‘취업 난민’인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찾아온 진짜 난민인가? 

갈림길에 선 난민들의 이야기 

2018년 제주도에 낯선 이방인 561명이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난민의 모습은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그들은 젊고, 건장했고,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굶주린 사람들의 이미지와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로써 가짜 난민 논란은 과열됐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데 71만 명이 동의했다. 

반면, 우리도 과거 난민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며, 진짜 난민이라면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맞섰다. 

더 이상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다큐 시선>에서는 우리가 난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난민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엇갈린 시선을 다루고자 한다. 


* 방송일시 (본방) : 2018년 09월 06일(목) 밤 9시 50분, EBS1 

* 방송일시 (재방) : 2018년 09월 09일(일) 오후 14시 30분, EBS1 


우리가 난민이 아니라면 진짜 난민은 누구인가요? 

”저는 예멘 항공에서 일했고 26개국을 여행했어요. 정말 멋진 삶이었습니다. “ - 예멘 출신 난민 신청자 무하메드 씨 

2018년 5월 15일, 제주도 땅을 밟은 무하메드 씨. 

그는 7개월 된 아들 함자와 아내를 데리고 이 먼 땅에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불법 노동자’ ‘취업 난민’ ‘일하러 온 사람’으로 보지만 그는 예멘에서 많은 걸 누렸었다. 

그는 예멘에서 5번째로 큰 항공사 직원이었으며, 70여 명의 직원을 감독했다. 

13개 사립학교에 급식을 대는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영어와 프랑스어 자격증도 있다. 

그에겐 좋은 집과 좋은 차, 좋은 직업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떠나야 했다. 

눈앞에서 폭격을 목격했고, 어린 생명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봤다. 

얼마 후면 끝날 줄 알았던 내전은 3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피난길은 험난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거처를 옮겨봤지만 예멘 안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예멘을 떠났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숨어 지내야 했던 무하메드 씨. 

그가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땅은 제주도였다. 

그는 총 소리가 없는 곳에서 가족들이 안전하게 살기를 바랐고, 함자가 교육을 받으며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했다. 

그는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가 가짜 난민이면 진짜 난민은 누구인가요? 

난민은 괜찮아도 이슬람은 안 괜찮다 

”유럽 사태 같은 거 보면 난민 범죄가 많이 있잖아요“ -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한 시민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면, 이슬람교를 믿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난민에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이슬람 난민에겐 적대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IS’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 ‘테러리스트’ 무슬림에는 이런 단어들이 따라다닌다. 

아이가 있는 부모와 여성들은 무슬림으로 인한 치안이 더 불안하다. 

취업의 문이 막힌 젊은이들은 그들에 대한 반감이 더욱 크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 

그것은 우리의 편견인가, 경계해야 할 사실인가? 


대한민국, 난민 인정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 

대한민국은 난민 심사 통과가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다. 

1992년에 난민 협약에 가입했지만 처음으로 인정한 난민은 그로부터 9년 뒤인 2001년의 일이다. 

또 지금까지 누적된 집계를 보면(2018년 5월 기준), 난민 신청자 4만 470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불과 839명으로 2% 수준이다. 

OECD에 가입한 37개 중 35위로 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난민의 입장에서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그야말로 ‘바늘 구멍’이다. 

그토록 원했던 난민 인정, 그 끝에는 여전히 고립된 삶 

”아직도 고립된 상태예요. 장애는 없지만 장애가 있다고 느껴져요“ -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아마드(가명) 씨 

고국인 카슈미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한국에 오게 된 아마드(가명) 씨. 

그에게 한국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에겐 안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외국인 보호소에서 2년 6개월 동안을 갇혀 있었고, 5년 동안 2번의 재판과 1460여 장의 서류를 증빙한 후에야 난민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난민 인정을 받으면 다른 삶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고립된 채 살고 있다는 아마드 씨. 

난민의 시선으로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